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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3.27 일본 기담_박지선, 이노우메 히로미

 

<잔혹하고 슬픈 일본의 기묘한 이야기들>

 

  박지선, 이노우메 히로미 / 청아출판사

 

 

뭐랄까, 나는 좀 이상한 아이였던가?

어릴 적부터 공포, 괴기, 요괴, 귀신 등 무서운 이야기들을 좋아했다. 엄청. 영화도 가장 선호하는 장르가

공포 내지는 스릴러, 꺼려하는 장르는 코미디와 보는 내내 마음이 아픈 영화들,

그리고 로맨틱코미디(는 가끔 보는구나)였으니.

 

그게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가 누군가로부터 "너는 왜 맨날 그런 것만 보니?"

내지는 "그런게 재밌어?","그거 볼 시간에 이걸 해라." "너 성격 이상하다."라는 말을 듣다가

"그러니까 니 성격이 그렇지. 고쳐야 해."라는 말까지 들으니 착찹했다.

 

무섭고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좋아하면 성격 이상한 거고, 뭔가 잘못된 사람인 건가?

 

 

 

왜에?

공포영화나 괴기영화 엄청 좋아하면 안 되? 그럼 이상한 거야?

그냥 취향이라고 생각해주면 안 되는 거야아~~~?

 

뭐 그렇다고 상처받고 쭈그러져 있거나 한 건 아니고,

믿었던, 아주 가까웠던 사람들에게 들은 말이라 상처는 조금 받았지만

 

흥!

 

 

나이를 먹어선 지금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책이건, 영화건, 만화건 죄다 그대로다. 일관성!!!

 

 

암튼, 오늘 소개할 책은 아마 이런 기담이니 괴담이니 하는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읽혔지

싶은  책이기도 한데, 나는 뒤늦게야 읽게 됐다.

 

전에 무척이나 기대하고 항설어백물어도 그렇고, 다른 일본 기담이나 요괴 관련 책을 몇 권 읽어보고

생각보다 평이하고 허술한(오래 전에 출판됐기에 문체나 구성이 아무래도 현대적 감각과 맞지 않았을 터) 점에 나름 실망한 터라, 이 책도 별 기대는 않긴 했다.

 

오, 근데 기대를 않는 걸 넘어서 마이너 기운을 가지고 읽었더니 오히려 괜찮았다.

 

 

 

일본 기담(이하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크게 원한, 사랑, 요괴, 동물, 괴이의 그 5주제 안에 5-6가지의 소재를 가진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들어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일본은 기이한 이야기가 세월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나라로 오랜 내전으로 죽음과 친근해진 탓일 수도 있고, 죽은 영혼들이 모두 신이 된다는 독특한 종교관 때문일 수도 있다고 했다. 전쟁과 잦은 지진 등 불시에 찾아와 삶을 앗아가는 것들과의 오랜 동거는 일본만의 독특한 이야기들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죽은 영혼들이 모두 신(반드시 좋은 신 혹은 고귀한 신이 아니고 소위 말하는 악귀나 원령 등도 다 포함된 것 같다)이 된다는 종교관을 가졌는지에 대해선 처음 알게 됐고, 바로 옆 나라인 한국 역시 일본의 기담처럼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신화니 전설들이 하는 것들이 있는데 조금은 다른 맥락인 걸까? 

 

우리나라도 오래 전 삼국 이전에도 수시로 싸워왔고, 삼국으로 각이 잡힌 뒤에도 싸웠고, 대륙에서 혹은 바다 건너 왜적으로부터의 침입도 받아 왔고, 남북이 갈리느라 싸우는 등 수많은 전쟁통에 많은 생명들이 죽어나갔는데, 한국도 예전의 전설에 더해서 그런 많은 죽음과 역경을 통해 생겨난 각종 괴이한 이야기들이 한국만의 종교관, 민족성, 문화 등으로 다르게 발달한 것인가? 

 

 

아무튼 책을 읽는 내내 억을한 영혼들, 특히 애정 문제로 갈등하다가 장벽이 나타나자 너무도 쉽게 목숨을 던지는 주로 여자(대부분 원혼이 된다)들과, 그당시에 팽배했던 계급계층이 휘두르는 권위의 폭력 앞에 무너져 복수를 하는 모습들을 보니 안타깝긴 했다.

 

그런 경우 한국 원혼들은 억을함을 호소하고 결국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로 결론나지만, 일본 모노노케들은 자신이 직접 복수를 행한다는 어찌 보면 적극적이고 더 공격적이라 읽는 입장에선 더 시원해야 하는데, 읽다보면 또 그것도 아니다. 또한 일본의 원혼들은 굳이 권선징악과는 상관없다고 했는데, 한국이건 일본이건 무조건 집착하다 복수를 하거나, 나쁜 짓을 한 경우 벌을 받는 경우가 꽤나 있는데, 그건 이야기 상황에 따라 다른 거 아닌가?

 

 

암튼, 귀신 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엉덩이 붙이고 한 권쯤은 거뜬히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마구 흥미진진하다거나, 엄청나게 소름끼친다거나 한 건 절대 아닌데, 그냥 죽죽 읽혀진다.

 

 

잠깐 스포를 좀 하자면,

 

원한에 속한 이야기 한편인 추녀의 복수(오쓰야 괴담)을 소개한다.

이 이야기는 혼란스러웠던 전국시대를 종식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가 들어선 에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당시 괄목할 성장을 이뤄 죠닌이라는 도시 상공업자들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문화와 경제 모두 활기를 띤 겐로쿠 시대에 벌어졌던 기이한 이야기다.

 

은퇴를 앞둔 하급 무사 다미야라는 사무라이는 딸을 하나 두고 있다. 딸인 오이와는 어릴 적엔 무척이나 고왔지만, 천연두를 앓고 난 뒤, 얼굴이 괴물처럼 일그러져 혼인이 어려워졌다.

다미야는 자신이 살아 있을 적에는 안정된 생활이 가능하지만, 자신이 죽은 뒤 남겨질 아내와 얼굴이 흉측해진 딸이 걱정되어 하루빨리 괜찮은 사위를 맞고 싶어한다. 그러나 오이오의 외모에 대한 소문이 난 뒤 아무도 그녀와 결혼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중매로 먹고사는 이의 추천으로 외모는 괜찮지만 신뢰가 가지 않는 로닌(주군이 없이 떠도는 사무라이로 안정되지 못한 상태)인 이에몬을 사위로 맞게 된다.

 

결혼식날 처음 오이와를 본 이에몬은 온통얽고 한쪽 눈꺼풀이 내려앉은 그 얼굴에 기함하지만 안정된 지위와 생활을 위해 결혼을 하고 운 좋게도 결혼 후 장인인 다미야와 장모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준다.

이에몬은 안그래도 성정 자체가 바르지 못한 사내였기도 했고, 아내의 혐오스러운 외모에 정을 못 붙이고 있던 터라, 고삐가 풀려 버리자 난잡하고 방탕한 생활로 하루하루 보내게 되었고, 그런 이에몬 곁에는 더한 양아치인 기베라는 작자가 붙어버린다.

 

기베는 자신의 아이를 가진 게이샤 출신의 첩 때문에 골치아파 하다가 이에몬을 꼬셔 아내와 이혼을 하게 해 줄테니 자신의 아름다운 첩을 데려가 살라고 한다. 이에몬은 바로 동의했고 이에몬의 아내인 오이와는 기베의 "당신 남편, 이에몬의 행태가 상부에 알려져 징계 직전이다. 당신이 다독야봐라.", "더이상 안 되겠다 곧 잘리게 될 것 같다. 우선은 당신이 이혼하고 좀 떨어져 있어봐라. 일자리를 구해주마. 당신 때문에 이에몬이 마음을 못 잡는 것 같으니 좀 떨어져 있다가 안정되면 다시 와라."는 말을 믿고 이혼을 한 뒤 일을 하면서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날 떠돌이 장사꾼에게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된 오이와는 그들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고 분노와 치욕, 좌절감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모노노케가 된 듯하다.

 

자, 그럼 이에몬은 어찌 살고 있을까?

 

이에몬은 기베의 첩을 아내로 두고 자식을 여럿 낳아 행복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고(그렇다면 기베의 아이까지 모르고 같이 키우고 있다는 애기가 되는 건가?), 기베 역시 방탕하고 자유스럽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다가 오이와가 사실을 알았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겁 먹었지만 잠잠하자 안심한다.

 

하지만, 모노노케로 변한 오이와의 복수로 이에몬은 아이들과 아내를 차례로 읽고 자신도 지붕에서 떨어져 죽게 되며, 이 일의 원흉인 기베 역시 자신과 함께 그 집안 사람 모두 병에 걸려 죽개 된다.

 

한국에서도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는데, 일본도 이런 점은 비슷했던 건지 간혹 괴담이건 기담이건 전설에서건 간에 비슷한 교훈을 담은 이야기들이 전해지는 것 같다.

 

 

참, 이 책의 표지 이미지 찾다가 기담에 관련된 아마도 영화 장면인 듯한데, 피 흘리는 여자의 이미지를 보게 됐다.

아~~ 소름이  돋아. 눈도 못 마주치겠어서 후다닥 창을 닫아버렸다.;;;

 

글보다 눈으로 온 자극이 더 강렬하긴 했나보다. 계속 여운이 남아서 무섭다.

 

 

 

Posted by 함께사는 이야기